영업자의 귀 : 고객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영업자의 귀 : 고객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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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자의 임무는 질문과 경청을 통해 고객의 입장을 파악하는 것이다.

_제임스 헤스켓 James L. Heskett: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 서비스 마케팅의 대가

톱 영업자가 되는 비결은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충성고객을 확보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과 친해지고 평생의 반려자인 로열 고객을 만든다면 톱 영업자가 될 수 있다.

_세스 고딘 Seth Godin: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전략가, 『이카루스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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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 내가 몸담았던 회사는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400억 원을 투자하여 한국형 신문편집 조판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의 신문편집은 수작업이었다. 신문의 지면 편집 레이아웃을 손으로 그린 후 기사가 놓일 곳을 정하고, 기사 내용이 작성되면 제작국 직원들은 납으로 된 활자를 하나하나 틀에 맞춰 면을 완성한 후 필름에 찍어내던 시절이었다. 이미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모든 신문사는 소프트웨어와 특수 IT장비를 이용해 전 작업공정을 처리하기 시작했었다. 이럴 때였으니 회사의 투자 결정은 새로운 경쟁 시대에 생존이 어렵게 된 신문사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개별 신문사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에는 비용이 워낙 크게 들어갔고 기술적인 문제를 감당할 수 없을 때였으니, IT회사가 이런 투자 결정을 내린 건 신문사와 국가를 위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우선 A신문사와 2년 가까이 소요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더불어 다른 두 신문사와 프로젝트 시기를 논의하고 있을 즈음 나는 이 부문의 영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A신문사와의 프로젝트는 이미 중반을 달리고 있었지만, 두 번째 신문사와의 계약이 지연되고 있을 때였다. 전년도에 이미 계약을 마쳤어야 했는데 담당 영업자의 실수로 계약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회사는 이에 영업자를 교체했다. 그 당시 담당 매니저는 나에게 “모든 것은 결정되었고 고객과의 가격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곧 고객이 우리의 조건을 수용할 것이다.”라고 확신 있게 이야기했다.

 

 

고객의 진짜 속내를 놓치지 마라

새로운 조직 발표가 있던 다음 날, 나는 상견례차 매니저와 함께 고객사를 방문했다. 이제까지 매니저가 고객 담당상무와 업무를 협의해왔기 때문에 신년인사를 겸한 가벼운 티 미팅을 가졌다. 나는 지금도 25분 남짓한 그때의 미팅을 잊지 못한다. 25분이라는 시간 중 23분 이상을 매니저만 떠들어댔다. ‘A신문사 프로젝트가 계획보다 빠른 진도를 내고 있다.’ ‘고객도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너무 계약이 지연되고 있다. 빨리 마무리 짓자.’ 그야말로 자랑과 재촉의 연속이었다.

고객 중역과 업체 영업부장의 대화였지만, 그래도 그 자리는 격의 없이 화기애애했다. 25분간의 미팅 시간 중 고객 상무는 우리에게 딱 세 마디만을 했다.

 

“그런데 이제 T사도 신문을 잘 찍어내네요.”

“쉽지 않아요. 실무자가 다시 검토하고 있으니 잘 협의해보세요.”

“어제는 H사도 기회를 달라고 사장님을 만나고 갔어요.”

 

고객 상무는 ‘T사’가 찍어낸 신문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매니저는 듣지 않았다. 그는 T사를 경쟁사로 취급하지도 않았었기에 T사가 만들어냈다는 신문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리고 프로젝트 일정을 고려하여 이번 달 안에 계약이 완료되어야 한다는 말만 늘어놓았다.

 

“시간을 끄는 건 모두에게 도움이 안 돼요.”

“우리가 제안할 수 있는 건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티 미팅이 마무리되었다. 나는 고객사를 나오면서 매니저에게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부장님, 뭔가 이상한데요. 아까 담당상무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고객 상무가 이야기한 세 가지 포인트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보인다고 말했으나, 매니저는 별로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현재 무슨 문제가 남아 있는지’ 그리고 ‘고객이 이야기한 실무자가 누구인지’를 다시 물었다. 그는 고객이 우리가 최종적으로 제안한 금액에서 추가로 5퍼센트의 할인을 더 요구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아 계약이 연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T사의 신문을 들먹이는 것도 모두 우리를 압박하기 위한 말이며, 경쟁사인 A신문사가 프로젝트의 중반을 넘긴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계약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날 미팅 자리에서 고객 상무는 추가 할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프로젝트 시작 시기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동상이몽’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첫 고객 방문이었고 매니저가 1년 반 이상을 만나왔던 고객이었기 때문에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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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고객과의 줄다리기는 석 달 가까이 더 계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회사와 매니저가 생각한대로 쉽사리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리라는 판단을 내리는 데까지 채 한 주도 걸리지 않았다. 우선 실무 책임자를 만나려 했지만 그는 우리 측과의 만남을 거부했다. 우리 회사 사람과는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해 들었고, 그 이유가 이전 영업자의 실수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채널을 통해 실무 책임자가 전년 말부터 백지 상태에서 프로젝트 업체 선정을 재검토하기 시작했으며, 경쟁사가 우리와 고객 간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더 적극적으로 고객사에 제안을 넣고 있다는 점도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새롭게 입수한 정보를 보고하고 우리가 고객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여 계약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해야 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1년 반 이상 이 일을 진행해온 매니저와 프로젝트 팀은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고객사 전산실 직원의 도움으로 5주가 지나서야 가까스로 실무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단, 고객 실무자는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식사를 마친 후 고객 실무자는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내가 이장석 씨를 너무 늦게 만났네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프로젝트의 상황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판단을 할 즈음이었고, 그의 한마디는 우리의 실패를 확실하게 못 박았다. 비록 프로젝트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상황에서 고객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또 다시 매니저와 프로젝트 팀에 현재 상황의 심각성과 우리가 최종제안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나, 그들은 고객 임원진과 논의한 결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며 조금 더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취했다. 그렇게 또 4주가 지났을 즈음 우리는 통보를 받았다. 고객은 우리의 경쟁사인 T사를 파트너로 선정하였다.

 

 

읽느냐? 잃느냐?

이 일은 회사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적어도 세 군데의 신문사에 우리의 솔루션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지고 말았다. 당연히 엄청난 투자 손실이 발생했고, 미디어 산업의 비즈니스 전략은 전면적으로 수정되었다. 프로젝트를 위해 채용했던 전문 인력들은 다른 부서로 재배치되었고, 우리는 본사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그 일이 일어난 지 2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만나면 대화를 한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접촉을 통해 친밀도를 높여간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과정이다. 나의 매니저는 고객과 선후배 관계처럼 격의 없이 만났고 편하게 대화를 주고받

았지만, 비즈니스 대화의 ‘기본’을 놓쳤다. 한 개인에게 실패의 책임을 묻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프로젝트 실패의 주요 원인은 매니저의 순진한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우선 그는 고객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함께 만났던 고객 상무는 그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에 익숙해져 있었다. 몇 차례 술자리도 가졌고 운동도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대화는 항상 매니저가 주도했고, 고객은 주로 듣는 쪽이었다. 바로 여기에서 비즈니스 대화의 기본이 무너졌다. 고객이 이야기할 기회를 주지 않고 영업자 자신이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점이다. 25분의 시간 중 도리어 고객이 23분간 이야기하도록 유도했어야 한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고객은 영업자에게 ‘메시지’를 준다. 직접적인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표정이나 제스처로 답을 한다. 길게 장황하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상대는 항상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25분의 시간 동안 채 3분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고객은 세 가지의 포인트를 주었다.

 

“그런데 이제 T사도 신문을 잘 찍어내네요.”

‘자네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 좀 더 신중하게 사태를 바라보라.’

“쉽지 않아요. 실무자가 다시 검토하고 있으니 잘 협의해보세요.”

‘나와 이야기하지 말고 실무자와 협의하라.’

“어제는 H사도 기회를 달라고 사장님을 만나고 갔어요.”

‘다른 경쟁사들도 만만치 않다. 제대로 대응하라.’

 

그는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사를 그날만 드러냈겠는가? 실제로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고객 상무는 “H부장(매니저)에게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는데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고객의 말 속에 숨겨진 포인트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이 영업의 핵심이다.

영업자로서 고객과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투자가 필요하다. 교육을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본인이 스스로 노력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너무 크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딱 두 가지만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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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비즈니스로 만난 사람은 반드시 본인의 의사를 표현한다.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면 표정이나 제스처로 이야기한다. 고객의 성향에 따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유적으로 돌려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장황하거나 간략하게 혹은 큰 소리로 말하거나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소곤대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고객의 습관이나 성향을 영업자가 고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제대로 알아듣는 일은 온전히 영업자의 몫이다. 만날 때마다 고객의 표현 방법과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이해력을 키워야 한다.

 

둘째, 나보다 고객이 더 많이 말하도록 해야 한다.

주도적으로 말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화를 할 때 반드시 나보다 고객이 최소 두 배 이상은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질문의 기술’이 중요하다. 질문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반찬을 고루 먹어야 하듯 질문 역시 이 세 가지 유형을 골고루 자유자재로 섞어서 던져야만 고객의 마음을 열 수 있다. 질문은 고객을 만나기 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좋은 질문은 고객의 성의 있는 답변을 불러오고, 영업자는 그때 집중하여 듣고 메시지를 이해하면 된다. 읽으면 이기고, 못 읽으면 다 잃는다.

 

 

질문의 유형

① Open Question

의문사로 시작해 고객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답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언제, 누가,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왜’로 시작하는 질문으로, 고객의 설명을 듣고 의중을 파악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리고 적절히 사용한다면 대화를 주도할 수도 있다. 미리 알고 싶은 점을 미팅 전에 육하원칙으로 나누어 점검하면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반대로 Open Question은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절대로 고객에게 물을 수 없다.

– 언제까지 보고하실 예정인가요?

– 언제 찾아뵈면 좋을까요?

– 누가 의사결정을 하나요?

–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이 진행되나요?

– 왜 일정이 변경되었나요?

– 무슨 주제로 회의가 진행되나요?

 

② Closed Question

고객이 ‘예’ 또는 ‘아니요’로 대답하게 하는 질문으로, 고객의 의중을 점검하는 데 사용된다. 만약 질문을 했을 때 고객이 ‘글쎄요’라고 대답했거나 응답하지 않았다면 부정에 가까운 대답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때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 자칫 고객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고객의 의중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라면, 다른 대화를 진행한 후 다시 돌아와 완곡하게 질문하는 편이 좋다. 역으로 고객이 나에게 Closed Question을 던졌다면, 먼저 ‘예’ 혹은 ‘아니요’라고 대답한 후 필요한 설명을덧붙이도록 한다.

– 내일 만나뵐 수 있을까요?

– 사장님의 승인을 받으셨나요?

– 보고를 마치셨나요?

– 워크숍에 참여하시나요?

– 저희 사장님을 직접 만나보시겠습니까?

 

③ Reflective Question

‘확인 사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고객의 의중을 재확인하거나 고객의 의중이 명확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질문으로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고, 고객을 다시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사장님 승인이 완료되는군요?

– 그러면 경영평가는 다섯 분이 하시는군요?

– 그러면 7시에는 출발하시겠네요?

– 토요일 5시에 전화하신다고 알고 있으면 될까요?

 

한 회사의 전략적 투자 그리고 그를 통한 산업재편 전략이 한 사람의 소통 실수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이런 황당한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으며, 지금도 영업 현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매 분기 영업자 한 사람이 한 번씩은 유사한 실수를 한다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B2B 영업에서도 이러할진대 B2C 혹은 P2P 영업에서는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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