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하는 영업자에게

첫 출근하는 영업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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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복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비즈니스 관행과 기형적 거래는 왜 생겨난 걸까? 오래된 인습, 형식주의, 과도한 인사치레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영업의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작용 때문이다.

비즈니스상의 거래가 을(乙)로부터 제공되는 진정한 가치에 의해 결정되기 보다는 갑(甲)과 을의 ‘개인적 관계’나 ‘금전적 보상’ 등에 의해 이루어지다 보니, 가치사슬에 연관된 모든 주체와 객체들이 병들어가고 있다. 그 범위는 점점 확장되어 사회 전체의 정신 세계가 혼탁해져버렸다.

 

무리한 접대 문화

한 끼에 10만 원이 넘는 식사, 한 번 하려면 100만 원이 넘는 골프 투어, 여러 형태로 변이되어 독버섯처럼 번지는 유흥 음식점,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가격의 명절 선물들…… 국민 소득 3만 달러 국가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소비행태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소득 상위 1퍼센트의 사람일지라도 이런 식으로 소비를 반복한다면 이내 거덜이 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모든 도시에는 값비싼 업소들이 들어차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더 고급화되고 있다. 지역 내 소규모 자영업체들이 간판을 내리고 있을 때에도 이들은 보란 듯이 더 번성하고 기업화되고 있다. 과연 이런 소비의 주체들이 내는 돈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른바 기업의 ‘접대비’이다. 수입이 적은 직장인이 자신의 소득보다 훨씬 더 많은 소비를 하면서도 여유로운 까닭은 무엇일까? 뇌물이나 촌지, 사례금 등 아직도 근절되지 못한 비정상적인 금전 거래 때문이다.

 

기형적 네트워크 증후군

직장생활을 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과연 몇 개의 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을까? 고등학교 동문회, 대학 동문회, 지역 향우회, 동아리 모임 정도는 아마 기본일 것이다. 여기에 사회에서 이런 저런 프로그램으로 엮인 관계까지 생각하면 두세 개는 더 있을 것이다. 제각기 순수한 의도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집단이겠지만, 그 속에는 집단을 확대하고 분열시켜 또 다른 집단으로 진화시켜나가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더불어 불필요한 관계에 가족이나 친구, 자신의 이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더 큰 열정을 쏟는 사람들도 많다. 모두가 시커먼 개인적 의도는 가린 채, 순수한 얼굴의 가면을 쓰고 처용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기형적으로 네트워크에 집착하는 행태는 이익집단주의의 변형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순수성을 표방하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고전적 이익단체보다 더 타산적이고 계산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모임을 운영하며 사용하는 경비의 출처와 내역을 들여다보면 누구도 이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의 정의와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기여하고 앞장서야 할 인재들이 인맥 중심의 비즈니스와 소셜 네트워크에 더 몰두하고 있다. 대학마다 최고 경영자 과정이라는 괴이한 형태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수강생들은 학구열을 빙자한 교류 작업을 회사의 경비로 대고 있다.

 

무리한 접대 문화, 부적절한 거래, 쓸데없는 인맥 확보 전쟁. 비즈니스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 세 가지 잘못된 행태는 정부의 정책이나 우리 국민성 혹은 역사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영업의 현장, 영업자 간의 비즈니스 거래가 근원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 진정한 영업 의식이 자리 잡고 거래의 투명성만 확보될 수 있다면, 위의 문제 정도는 즉시 바로잡을 수 있다.

물론 정부에서 좀 더 강력한 예방 및 처벌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며, 모든 경제 주체와 객체가 환골탈태한다면야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이 모두가 제대로 결합하여 결과로 나오려면 적어도 수십 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니 남들이 어찌하든 ‘나 하나’라도 달라지리라는 의지와 실행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모여 우리의 의식이 되고 바른 의식이 사회 전체에 뿌리 내린다면 모든 거래는 투명해지고, 잘못된 접대 문화는 사라지고, 가치에 입각한 거래가 정립되고, 불필요한 인맥 전쟁이 모두 종식될 것이다.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먼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있는 잘못된 영업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 영업은 이해 당사자 간의 거래를 가능케 하는 행위로, 양 당사자가 가치를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신성한 행위이다. 가치는 오롯이 을이 갑에게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의해서만 판단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대가를 갑이 재화로 지불하면 된다. 고로 영업에서 을은 자신이 가진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극대화시키고, 갑의 장 ∙ 단기적 ‘기대 가치’를 충족시키고, 궁극적으로는 갑의 가치를 극대화시켜야 한다.

이때, 거래의 본질에 어긋나는 어떠한 다른 거래도 갑과 을 사이에 존재해서는 안 되며, 본질적 가치 외에 다른 어떤 요인도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개인의 이익을 위한 비정상적 요소가 영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산 공정에 불량품이 들어가는 것이나 화학 프로세스에 불순물이 들어가는 것, 진공상태의 실험실에 틈이 벌어진 것과 같다. 그러기에 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부터, 영업 활동으로부터 파생되는 경제적 과실에 의해 생활을 영위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진정한 영업의 원칙을 인지해야 한다. 만약 어긋난 상황을 접했을 때엔 참지 말아야 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영업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영업자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정직해야 하고, 가장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 운동선수가 끝없이 체력을 단련한 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밤낮없이 연습하고 공정하게 경기장에서 실력을 겨루듯,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기본적 마인드를 갖춘 후에 스스로의 역량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 회사에 입사해 30년 가까이 영업을 하면서 때로는 분에 넘치는 외부로부터의 제의도 받았고 다른 기회로 고민해본 적도 있었지만, 오직 한 곳에 발을 딛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난 30년 간 단 한 번도 눈앞의 비즈니스 목표를 위해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하도록 요구받은 적이 없었고, 나 또한 직원이나 후배에게 잘못된 일을 시킨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경쟁사의 어이없는 영업 행태로 인해 비즈니스를 놓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그런 회사가 부럽지 않았고, 그런 조직에 얽혀 잇는 고객을 보면서 연민도 느꼈다. ‘떳떳함’이 나를 오늘까지 이곳에서 일하도록 지탱해주고 응원해준 힘이 아니었을까 한다.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는 영업은 영업이 아니다. 영업은 상대방을 속이는 게 아니다. 진정한 영업자는 스스로 자부심을 느껴야 하고, 보람이 용솟음쳐야 하고, 갑과 을의 관계로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갑과 평생 동반자의 관계로 발전시킬 줄 알아야 한다.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지식을 알려줄 수 있지만, 진정한 인성교육은 가정의 몫이다. 부모의 교육과 가정환경이 중요하듯, 영업은 책이나 강의에 의해 완성되지 않는다. 영업에 필요한 기법이나 지식은 책을 통해 체득이 가능하지만 바른 영업 의식은 영업자가 속해 있는 조직의 전통과 문화, 선배들의 행동과 사고방식, 상사의 의식세계와 가치관에 의해 형성된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기본’에 관해서만큼은 지나치리만큼 엄했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영업 현장에서 발로 뛰며 정리한 자료를 후배나 직원들에게 공유하면서, 언젠가는 이를 다시 정리해 더 많은 영업자들에게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한 사람이라도 더 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길 바란다. 그리하여 대한민국 영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가 투명해지고 가치에 의해서만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그래서 우리 사회의 기형적인 소비 행태와 비리가 사라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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