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1

갑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1

요즘 언론 매체를 통해서‘갑(甲)질’이란 ‘이상한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된다. 도둑의 뒤에‘놈’을 붙히고 사기를 일삼거나, 노름에 빠진 사람을 가리켜‘사기꾼’‘노름꾼’이라고 할 때 ‘꾼’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듯이, ‘갑(甲)’뒤에 ‘질’을 붙힌다. ‘갑의 행동’‘갑의 행위’도 아닌 ‘갑질’이라고 한다.

영세업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 홈쇼핑 직원이 납품업체에게 못된 짓을 행할 때,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기업이, 힘 없는 대리점에 제고를 떠 안기고 회사 회장이 자신의 기사에게 욕을 퍼붓는 등, 반 인륜적 행동을 할 때, 언론은 헤드라인을‘갑질’로 뽑는다. 코미디 프로에서도 ‘갑’은 어이없는 행동의 대명사로 다루어진다.

‘갑(甲)’과‘을(乙)’, 십간(十干)의 첫째와 둘째 이다. 십간의 처음인‘갑’이, 이제 막 음기를 뚫고 나오는 양기의 형상이라 치면, ‘을’은 양기가 한 단계 더 펼쳐진 상태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순서로 보면 갑이 앞서지만 그 기(氣)는 을이 더 강하다. 계약서상에서 ‘갑’그리고 ‘을’은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받으며 그에 상응하는 재화를 주고 받는 상호 필요한 계약 상대자 이다. 즉,‘을’은‘갑’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나 용역 서비스를 제공하고,‘갑’은‘을’에게 그에 상응하는 재화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래의 과정에서‘갑’은 상대적으로 우월한 입장에서 거래를 주도하고,‘`을’은‘갑’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는 절실한 입장이 되고, 때론 하수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다 보니, 본연의 거래 관계를 떠나‘갑’과‘을’을 계층적 관계로 일반화 시키고, 관용적으로 `갑’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거나 우월한 입장의 사람을 지칭하고,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고 힘 없는 상대를‘`을’로 지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찌되었건 이제‘갑’과 ‘을’은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옳치 않은 구분이지만, 그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갑을 논하자면, 판매자의 상대편인 구매자와 재화를 매개체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을 갑으로 보고, 회사나 조직 또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지위나 권한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도 갑이라 칭하겠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은,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 과장과 부장이 만나면 부장이 갑이 되겠지만. 그 부장이 상무와 만나면 부장은 상무의 을이 되는 것이고, 상무도 사장을 만나면 다시 을이 된다. 자동차 영업사원이 영업상 카페의 주인을 고객으로 만난다면 을이 되지만, 일과 관계없이 카페에 손님으로 갔다면 그가 갑이다. 상황에 따라, 관계의 변화에 따라, ‘갑’이 되기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직무가 영업인 사람도, 1년이라는 시간을 전부 펼쳐 놓고 보면 10%도 안되는 시간이 을로서의 삶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갑으로서 지낸다. 물론 병(丙), 정(丁)의 시간도 있다. 분명한 것은, 누구나 갑의 시간이 더 많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좀 더 투명하고, 성숙된 사회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우리의 국격(國格)을 높히는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모든 사람이‘을’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갑’으로서 살고 있는데, ‘갑’의 격을 높이는데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가 갑인데, 괴상한 갑의 행위를 손가락질하며, ‘갑’이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괴물로 생각하고 비판만 하는 것이 옳을까?
영업을 하는 사람,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하는 자세와 행동양식에 대한 얘기는 글도 많고, 의견도 많고, 책도 다양하지만, 갑의 자세에 대한 체계적 논의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을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고 을이 아무리 잘해도 변화가 불가능한 일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에‘갑질’이란 표현을 하며 들끓듯이 비판하지만 이내 잊고, 또 잊을만 하면 또다시 어이없는 행태에 흥분하는 것으로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갑은 누구인가?
갑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갑이 바꿀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위대한가?
갑이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갑으로서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스스로 을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실제는 거의 갑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갑이다. 우리는 이 명제를 놓치고 살고 있다. 그리고, 갑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누구나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고, 잘못된 을도 바꿀 수 있고, 바른 갑이 또 다른 올바른 갑을 만들어 낸다. 갑으로서의 갑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힘을 느껴야 하고, 주체로서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갑이 갑인 것을 모르고, 갑이 갑의 본분을 잊고, 갑이 다른 갑만 보고 손가락질할 때, 희망이 없다. 나도 갑이고 당신도 갑이고 모두가 갑이다.
김소운 선생님이 목근통신에서 그릇가게에서의 이야기로 사무라이 정신을 다루면서 일본인의 오만한 사고를 꾸짖었지만, 그런‘조금은 지나친’의식이 지금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양심을 상대가 믿지 않고, 자존심이 짓밟혔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으로 그것을 보이려 했던, 사무라이 정신, 그것을 비하하기 보단, 정직성을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그들의 기준을 높이 사고 싶다.
‘을’의 잘못을 모른 체 하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무관심하고, 귀찮아서 지나치고, 뒤에선 불평한다면, 그‘을’이 바뀌겠는가?
을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되 을의 옳지 않은 행동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갑, 모든 거래의 본질을 투명하게 유지하고 언제나 당당할 수 있는 갑, 그래서, 이 땅의 모든 갑이 진정한 갑, 성숙돤 갑이 된다면, 부정, 비리, 불합리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상은 바로 잡힐 것이라 생각한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